지구를 데우는 나무
- 발행일
- 2026-08-23
- 편집자
- 임소연
'재생에너지'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지붕 위 태양광 패널, 언덕 위에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먼저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태양광 다음으로 큰 재생에너지원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풍력의 4배나 되는 이 에너지원. 그 정체는 바로 나무를 태워 만든 전기입니다.
이름하여 바이오매스. 목재를 잘게 갈아 만든 펠릿을 화력발전소에서 태우는 방식이에요. 이 방식으로 국내에서만 매년 700만 톤 넘는 나무를 태우고, 그로 인해 11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전소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2025년 영남권 대형산불이 뿜어낸 온실가스의 3배가 넘는 양이에요.
그런데 이상하죠. 나무를 태우면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인데, 왜 이걸 '재생에너지'라고 부르는 걸까요.

‘나무는 또 자라니까’
먼저 숫자부터 짚어볼게요.
목재펠릿을 태워 전기 1kWh를 만들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석탄으로 만들 때의 3배, 천연가스로 만들 때의 6배입니다. 어떤 화석연료보다도 배출량이 많아요.
그런데 국제 탄소회계 규칙상, 이 발전소의 배출량은 '0'으로 기록됩니다. 무배출 발전소인 셈이에요.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이 논리는 하나의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나무는 다시 자란다"
베어낸 자리에 새 나무가 자라면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하니까, 결국 배출량이 '0'에 수렴한다는 논리예요. 국제 탄소회계는 이 전제를 받아들여서, 발전 부문에서 바이오매스 배출은 계산에 넣지 않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자란다'는 전제의 허점
문제는 이 전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어요. '나무는 다시 자란다'는 문장에 세 가지 시간의 함정이 있거든요.
첫째, 배출과 흡수 사이의 시간 차이.
우리는 다 자란 나무를 몇 시간 만에 태워요. 하지만 그 나무가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새 나무가 되찾아오려면 수십 년, 수종에 따라선 100년 이상이 걸립니다. 배출은 즉시, 흡수는 수십 년 뒤. 그 사이 대기 중에 쌓인 이산화탄소는 이미 기후를 데우고 있어요.
둘째, 벤 자리에 정말 같은 숲이 자라는가.
어린 묘목이 다 자란 나무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벨 대상이 원시림이나 오래된 자연림이라면, 회복은 훨씬 더 어려워져요. 사람이 심은 조림지가 원래 있던 숲의 생태적 기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셋째, 재생 속도가 벌목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가.
재생 속도보다 벌목 속도가 빠르면, '재생 가능한' 자원도 실질적으로는 '고갈되는' 자원이 됩니다. 세계 바이오매스 산업이 지금 그 속도로 달리고 있어요.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결과는 하나예요. 바이오매스 발전소는 사실상 화석연료 발전소처럼 대기를 데우고 있다는 것.
어쩌다 나무를 태우게 됐을까
이상한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어디서 많이 본 그림이거든요.
인류가 나무를 땔감으로 쓴 건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그러다 산업혁명 시대에 석탄으로 옮겨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나무보다 석탄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부피로 훨씬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인류는 나무 → 석탄 → 석유·가스로 에너지 밀도를 높여왔습니다. 효율의 방향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나무를 태우고 있어요.
그것도 '재생에너지'라는 이름으로요.
이 이상한 되돌림의 시작은 2012년입니다. 그해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RPS)'를 도입했어요. 대형 발전사가 일정 비율 이상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도록 의무화한 제도죠.
문제는 이걸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이었냐는 거예요.
기존 석탄발전소를 조금만 개조하면, 석탄 대신 목재펠릿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새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지을 필요도, 태양광 부지를 확보할 필요도, 풍력발전기 인허가를 받을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발전소에 들어가는 연료만 바꾸면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인정받았거든요.
발전사 입장에서 이보다 간편한 선택은 없었죠.
태양광은 판을 새로 깔아야 했고, 풍력은 부지를 새로 찾아야 했지만, 바이오매스는 이미 있는 화력발전소를 그대로 쓸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국내 바이오매스 발전은 순식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내 바이오매스 발전량은 태양광 다음, 풍력의 4배까지 자라났어요.
'재생에너지'라는 이름 아래, 나무를 태우는 발전소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지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겁니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이 나무들,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한국에서 매년 태우는 나무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 나무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어딘가에서 베어져 오죠. 국내 어딘가, 그리고 국경 너머 어딘가에서요.
다음 편 <매일 사라지는 축구장 19개>에서 우리가 태우는 나무가 어디서 오는지 추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