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 전역이 ‘계통포화’로 묶이며 신규 재생에너지 접속이 사실상 중단된 상황
송전망 중심 접근으로는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 어려워, 지역 전력시장 전환 필요성 커져
기후솔루션 “지역이 전력 생산·소비·거래의 주체가 돼야 에너지 전환이 작동한다”
보고서 확인하기: https://forourclimate.org/ko/research/632
정부가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재생에너지 생산의 중심지인 호남과 제주에서는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 접속이 제한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12일 발표한 보고서 ‘지역주도형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전력시장 개선 방안’에서 이러한 모순의 원인이 재생에너지 기술이나 주민 수용성 문제가 아니라, 중앙집중적으로 설계된 전력시장 구조에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송전망 중심의 기존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이 직접 전력 생산·소비·거래에 참여하는 지역주도형 전력시장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23년 기준 약 30GW 수준의 설비 용량을 3배 이상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오히려 둔화되고 있다. 한국전력은 2024년 계통포화를 이유로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으며, 이 가운데 호남과 제주는 전 변전소가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는 송·변전 설비가 완공되는 20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계통 접속이 원칙적으로 제한된 상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가장 많은 설비가 들어선 지역이 오히려 전환의 병목으로 묶이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계통포화 상황에 대해 정부와 전력 당국은 초고압 송전망 확충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통해 송전선 건설 절차를 단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접근이 시간적·사회적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고 평가했다. 345kV 송전선 하나를 건설하는 데 평균 9년이 소요되는 데다, 이미 계획된 송변전 설비 사업의 절반 이상이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송전망 확충만으로는 2030년 목표에 맞춰 재생에너지 수용 여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다시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계통 문제 해결에 장기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비용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림 1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적용되더라도 송전망 확충까지 평균 9~13년이 소요되면서 2030년 보급 목표에 맞춰 재생에너지 추가 수용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보고서는 대안으로 지역 PPA(전력구매계약)와 지역 유연성 시장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99%는 10MW 미만의 소규모 설비로, 대부분 배전망에 연결돼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에 주목해, 배전계통을 활용해 지역 내에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할 경우 대규모 송전망 증설 없이도 재생에너지 수용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파주시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지역 PPA를 통해 중소기업에 민간 주도 PPA나 한전 요금보다 저렴한 수준의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며, 지역 기반 전력 거래가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로 소개됐다.
또한 보고서는 현행 직접 PPA 제도가 최소 설비용량과 계약전력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하고 있어 중소기업과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다수의 발전원과 다수의 수요자가 참여할 수 있는 집합형 PPA 구조를 허용하고, 인근 지역에서 생산·소비되는 전력에 대해서는 망 요금을 차등 적용해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지방정부와 지역 에너지공사가 재생에너지 전력공급사업자나 VPP(가상발전소)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지역 산업 경쟁력 강화, 전기요금 부담 완화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림 2 배전망을 활용한 지역 유연성 시장 구조의 도식화
기후솔루션 김건영 변호사는 “전력망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누가 에너지 전환의 주체가 될 것인가에 대한 구조적 문제”라며 “지역을 계통포화로 묶어두고 송전망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도, 지역 균형발전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이 직접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거래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구조를 전환해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부담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전은 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맞춰 2024년 11월부터 배전계통운영자(DSO) 역할을 본격화하며, 지역 단위 전력망을 직접 관리·운영하는 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배전망 관리 원칙과 중장기 증설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 전력망의 혼잡과 전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유연성 서비스’ 도입도 준비 중이다.
지역 유연성 시장은 태양광, ESS, 수요반응(DR) 등 분산형 전원을 묶어 운영하는 VPP 사업자가 전력 사용량이나 발전량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을 하나의 서비스로 제공하는 구조다. 이를 활용하면 송전선이나 변전소를 새로 짓지 않고도 특정 지역의 전력 혼잡을 완화할 수 있어, 대규모 전력망 건설을 지연하거나 대체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기후솔루션은 지역 유연성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발전자회사를 보유한 한전이 직접 시장운영자로 나서면서 시장의 공정성과 활성화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시장 규칙을 정하고 거래 조건 및 거래 상대방을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다른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역 유연성 시장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장 운영의 투명성과 이해상충을 해소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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