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줌·인코어드·에이치에너지·브이피피랩 4개 기업 및 기후솔루션 공동 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 공동서한 전달“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늘려도 담아낼 시장이 없으면 소용없다”…25년째 멈춘 전력시장이 병목
연료 안 쓰는 배터리·가상발전소는 전력망 안정에 기여해도 보상받을 길 없어…”
사업자들 “새 예산 아닌 규칙 문제…실시간 시장·보조서비스 시장 열고, 참여 자격과 로드맵 마련해야”

ESS(에너지저장장치)·VPP(가상발전소) 등 전력 신산업 사업자들과 기후솔루션이 9월 2일 오전 11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통령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전력시장 제도 정비를 촉구하는 공동서한을 전달한다. 기자회견에는 해줌,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에이치에너지, 브이피피랩 등 4개 기후테크 기업이 참여하며, 서한의 참조 대상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다.
이들의 메시지는 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늘려도, 그 전기를 담아낼 시장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100GW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작 그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꺼내쓰는 ‘그릇’에 해당하는 시장 제도는 25년째 낡은 채로 멈춰 있다는 것이 사업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태양광·풍력은 날씨에 따라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하다. 낮에 전기가 남으면 저장했다가, 저녁에 부족할 때 꺼내 써야 전력망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ESS와 여러 설비를 묶어 관리하는 VPP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전력시장은 이런 ‘저장하고 조절하는 역할’에 값을 매겨 주지 않는다.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전력망을 안정시켜도 보상받을 길이 없으니,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자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결국 하나로 모인다. “전기를 제값에 사고팔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장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실시간으로 전기 가격이 매겨지는 시장을 만들고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기여에 정당한 값을 쳐주며 △배터리·가상발전소도 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격을 열고 △언제 어떤 시장이 열리는지 분명한 일정표(로드맵)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새로운 예산이 드는 일이 아니라 규칙만 바꾸면 되는 문제라는 점을 이들은 강조한다.
실제로 제도를 먼저 바꾼 나라에는 자원이 몰렸다. 호주는 2021년 배터리와 가상발전소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열자, 석탄·가스가 맡던 예비 전력이 빠르게 배터리로 대체됐다. 미국도 2023년 가상발전소를 2030년까지 최대 160GW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관련 제도를 정비했다. 반면 한국에서 비슷한 시장(실시간·예비력 시장)은 2024년 6월 제주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됐지만, 육지로의 확대는 2027년 이후로 미뤄지며 일정조차 확정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시장 구조에 있다. 대형 발전소와 송전망을 짓는 데는 수년이 걸리지만, 배터리·가상발전소 같은 유연성 자원은 수개월이면 전력망에 투입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 확보된 유연성 자원이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를, 사업자들은 필요한 시장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현행 전력시장은 전력망 안정에 필요한 주파수 조정·예비력 등 ‘보조서비스’를 기여도가 아니라 연료를 태우는 발전기의 연료비를 기준으로 보상한다. 이 때문에 연료를 쓰지 않는 ESS와 VPP는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응동해도 그 가치를 보상받을 근거가 없다. 또한 전력시장의 운영 방식도 2001년 설계 그대로여서, 하루 전에 발전계획을 짜고 전력거래소가 발전기를 직접 지시하는 구조다. 당일의 수급 변화가 가격 신호로 전달되지 않다 보니, 전력거래소는 예비 전력을 필요 이상으로 확보하고 발전기를 직접 호출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최근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점도 짚었다. 호남에 유치되는 반도체 팹의 전력수요는 LNG 등 추가 대형 발전소 건설 없이도 지역에 남아도는 재생에너지로 조달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지역 계통이 변동성을 잘 흡수하도록 기술을 보급하고 정책을 조정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시민단체가 아닌 실제 시장 참여 기업들이 함께 목소리를 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기후솔루션 전력시장계통팀 김선규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100GW 목표는 발전소를 더 짓는 것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며 “정부는 대규모 경직성 발전기를 중심으로 설계된 낡은 전력시장 규칙을 재생에너지에 맞게 다시 설계해, 유연성 자원이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시장을 조속히 열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 기업 발언(가나다순)
브이피피랩
“VPP와 ESS의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완화 및 계통 안정화 기여도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성과 기반 보상체계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에이치에너지
“물리적인 선로는 하루아침에 늘릴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있는 자원을 가격 신호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금 당장 가능하다. 재생에너지가 하나의 산업으로 스케일업하려면 유연성 자원이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는 시장이 필요하다.”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VPP 시장 고도화를 위해서는 현재 제주도에만 국한된 입찰제도를 조속히 육지로 확대하고, 전력계통 안정화에 기여하는 VPP의 역할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해줌
“제주 시범사업을 통해 VPP는 재생에너지의 예측·제어·정산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기술력을 이미 확보했다. 이제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의 조속한 육지 도입을 통해 ESS 등 하드웨어 투자와 VPP 운영 기술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이것이 신규 재생에너지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신속한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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