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
- 발행일
- 2026-07-13
- 편집자
- 정유진
가스전 주변 풍경은 전 세계 어디든 무섭도록 닮아있습니다.
작년 2월, 캐나다 웻수웨탄 선주민들이 수십 시간을 날아 한국을 찾았습니다. 동의 없이 그들 땅에 가스 송유관이 깔리자, 한국가스공사 등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막기 위해서였죠. 국제법상 선주민들이 가진 '자유로운 사전 인지된 동의' 원칙은 종이 위에서만 살아있었습니다.

2025년 2월14일 서울 성동구 기후솔루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웻수웨튼족 대표단. 출처. 한겨레21
이뿐만이 아닙니다. '바다의 아마존' 필리핀 베르데섬은 인근 일본 공적금융기관(JBIC)이 자금을 댄 LNG 터미널 탓에 중금속으로 오염됐고, 호주 바로사 가스전은 송유관으로 멸종위기종 서식지를 파괴했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의 LNG 터미널에선 누출과 폭발 사고가 끊이지 않죠 .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전 세계 화석연료 인프라 5km 이내에 살며 위험에 노출된 어린이만 무려 5억 2천만 명에 달합니다.
강제 이주, 생계 붕괴, 폭력과 생태계 파괴까지. 누군가는 에너지가 곧 '안보'라며 어쩔 수 없다지만, 이는 누군가의 인권이 우리 안보보다 못하다는 잔인한 변명입니다. 이 모든 비극이 가장 참혹하게 응축된 곳, 바로 아프리카 모잠비크입니다.
모잠비크 카보델가도, 희망이 피로 물들다
모잠비크 북부 카보델가도 해상에는 21세기 최대 규모(약 100조 입방피트(tcf))로 꼽히는 엄청난 천연가스가 묻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세 개의 대형 LNG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에요. 프랑스 토탈에너지스가 이끄는 약 200억 달러 규모의 모잠비크 LNG, 미국 엑손모빌의 로부마(Rovuma) LNG, 그리고 한국가스공사가 지분 10%를 가진 ‘코랄 사우스 FLNG’.
가스가 발견되자 수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제2의 두바이처럼 될 거라 믿었습니다. 토탈에너지스는 건실 기간 최대 7000개 일자리를 약속했죠. 하지만 실상은 지옥에 가깝습니다. 가스전 부지를 짓기 위해 주민들은 강제로 쫓겨났고 대대로 고기 잡던 바다 접근권마저 막혔죠. 약속했던 일자리는 외부 고숙련 기술자들이 차지했고, 살 길이 막힌 청년들은 극단적인 무장 반군으로 흘러갔습니다.
"반군이 사람들을 참수했어요. 이웃들의 잘린 머리 사이로 도망쳤어요. 걷고, 걷고, 또 걸었어요. 계속 숲속에서 잤어요. 그렇게 계속 걸었더니 도로에 이르렀어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어요. 모두가 오진 못했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노인과 아이들이 먼저 죽어갔어요. 몇 명이 죽었냐고요? 그건 몰라요. 그러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건 알아요."
호아키나(61), 2019년 반군이 고향 마을을 습격해 그의 딸과 남편, 두 아이가 있는 집에 불을 질렀고, 그는 딸의 가족이 산 채로 불타는 걸 목격했다.
2017년 이슬람국가(IS) 연계 단체의 공격이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만 최소 6200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13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서울로 치면 2,000세대 대단지 아파트 주민 전원이 사망하고, 시민 9명 중 1명이 실향민이 된 셈입니다.
분쟁, 가스전 때문인가?
분쟁이 가스전 때문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많습니다. 기업들은 자신들도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모잠비크 안보연구소와 사법연수원이 카보델가도 시민 309명과 주요 정보제공자 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민 절반 이상이 '천연자원(루비와 천연가스) 개발'이 위기를 악화시켰다고 답했습니다.

"해당 지역에서 루비와 천연가스 매장지가 발견된 이후 불평등은 심화했고, 정부는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생계 터전에서 강제로 이주시켰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이미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 사회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으며, 이로 인해 야기된 불만은 지역 청년들의 급진화에 두드러지게 기여했다." — 기후솔루션, 『불가항력 선언』
이 비극을 돕는 한국의 3가지 책임
이 끔찍한 비극을 지탱하는 가장 큰 자금이 바로 한국에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첫째, 지분 투자자로서. 한국가스공사는 2007년 모잠비크 Area 4 광구의 지분 10%를 인수했습니다. 코랄 사우스 FLNG는 2022년 11월부터 LNG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2047년까지 연 337만 톤 규모로 운영될 예정이죠.가스공사는 후속 사업인 코랄 노스 FLNG에도 자회사 KG모잠비크를 통해 약 7500억 원(5억 62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고요.
둘째, 공적 금융 제공자로서.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코랄 노스 사업에 약 18억~19억 달러(약 2조 6000억 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검토·추진 중입니다. 피 묻은 가스전에 우리 세금이 흘러들어가는 겁니다.
셋째, 국제 기후 협상 방해자로서. 최근 OECD 회의에서 37개국 중 30개국이 화석연료 금융을 제한하자고 뜻을 모았지만, 한국이 반대해 합의가 무산됐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오늘의 화석상’ 1위라는 국제적 망신을 당했고, “BTS, 삼성, 삼겹살의 나라가 화석연료 금융에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조롱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날아올 세 가지 청구서
모잠비크 가스전은 인권 문제이자 기후, 경제 그리고 에너지 안보 문제입니다. 모두 하나로 연결돼있죠. 현지인들의 삶을 무너뜨리며 채굴되고, 기후 위기를 악화하며 운반돼, 좌초자산으로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기후 청구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각국이 이미 발표한 기후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기만 해도 추가적인 LNG 사업은 필요없다고 봤습니다. 지금 가동 중인 LNG 설비만으로도 1.5도 목표를 지키지 못할 거란 경고도 있죠. 코랄 노스에서 추가로 생산될 연 350만 톤의 LNG는 그 자체로 거대한 탄소 자물쇠(carbon lock-in)예요. 모잠비크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단 0.21%만을 차지하지만, 가뭄과 해수면 상승 등 그 대가는 가장 크게 치르고 있는 기후 취약국입니다
안보 청구서
'에너지 안보'를 핑계 대지만, 우리는 러-우 전쟁과 중동 위기를 거치며 수입 연료 가격의 폭등을 경험했습니다. 그 비용은 한전의 누적 부채 205조 원으로 돌아왔고요. 외부에 목내는 에너지는 안보가 아니라 ‘취약성’일 뿐입니다.
좌초자산 청구서
한국가스공사의 부채는 이미 막대합니다. IEA의 1.5도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대 이후 글로벌 LNG 수요는 지금보다 가파르게 줄기 시작해요. 일본은 이미 2014년 대비 LNG 수요가 25% 줄었고, 2030년까지 또 25%가 줄 전망이죠. 25년짜리 장기 사업인 모잠비크 가스전은 10년 뒤면 운영비도 건지기 힘든 '좌초자산'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이 막대한 손실은 결국 국민의 몫입니다.
가스를 끊어내는 것, 희생 아닌 희망
국가의 공적 금융은 그 나라가 선택한 미래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금은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최근 미-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겪은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안보 체계"를 선언했습니다. 에너지를 해외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낡은 자원 개발 공식으로는 더 이상 진짜 안보를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세계적인 돈의 흐름도 이미 바뀌었습니다. OECD 30개국이 합의했듯, 글로벌 자본은 신규 화석연료 투자를 멈추고 재생에너지 인프라로 방향을 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뛰어난 재생에너지 기술력을 생각하면, 이 변화에 올라타는 건 마지못해 치르는 '희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입니다.
모잠비크 가스전 한 곳에서 우리는 인권, 기후, 경제, 안보라는 무거운 청구서를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이 가혹한 빚더미를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으려면, 당장 자금의 흐름을 멈추고 새롭게 설계해야 합니다. 가스가 흐르는 곳에 사람의 인권이 메마르는 비극적인 풍경, 더 이상 대한민국의 공적 자금으로 앞장서서 만들 이유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