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는 거짓말
- 발행일
- 2026-07-13
- 편집자
- 박윤경
우리는 쓰는 가스의 100%를 바다 건너 수입에 의존합니다.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서 총소리가 나거나 호주 가스 공장에서 파업만 일어나도 글로벌 가스 가격은 미친 듯이 치솟습니다. 우리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한 '안정적인 필수 연료'라는 포장지와 달리, 밖에서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결국 국민이 갚아야 할 거대한 빚더미를 조용히 쌓아 올리고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현실을 짚어봅니다.
지난 시리즈에선 석탄으로 전기 만드는 시대가 끝나야 하는 이유를 다뤘습니다.
이번엔 석탄의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오려 하는 또 다른 화석연료 '가스(LNG)' 이야기를 해볼 차례입니다. 우리는 흔히 가스가 매연도 적고 비교적 안정적인 필수 연료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석탄만큼이나 엄청난 양을 때우고 있으면서도 말이죠.
그런데 이 믿음, 과연 사실일까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동 호르무즈 해협 사태는 이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착각이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벌어지는 일

현재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전제로 휴전을 논의 중이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고 바닷길은 여전히 막혀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느냐 마느냐.
이 문제와 가스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물동량이 집중되는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스 수송의 핵심 길목입니다. 전 세계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죠. 그러니 이 길목이 막히면 가스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수요는 그대로이니 자연스레 국제 가스 가격도 치솟게 되고요.
2026년 초 미국과 이란, 그리고 그 주변국 간의 충돌이 일으킨 충격은 컸습니다. 세계 2위 가스 수출국인 카타르의 라스라판 핵심 생산기지가 이란에 피격돼 가동을 멈췄어요. 카타르 국영 기업은 “가스를 약속대로 보내기 어렵게 됐다”며 ‘불가항력’을 선언해버렸죠.
더 큰 문제는, 당장 바닷길이 다시 열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현재 카타르 전체 가스 수출 능력의 약 17%가 파손된 상태라,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복구에 꼭 필요한 특수 가스터빈을 주문하고 납품하는 데에만 최대 4년이 걸릴 수 있어요. 공급 문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단 의미죠.
‘다른 데서 사 오면 되잖아?’ 완벽한 착각
위기가 터졌을 때 가장 피를 보는 건 가스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들입니다.
한국은 전체 전기의 3분의 1을 가스로 만듭니다. 그중 18%가 바로 이 호르무즈 해협을 타고 들어옵니다. 공급과 가격 모두를 외부 변수에 맡기고 있는 구조인 거죠.
실제로 이 해협이 한 달만 봉쇄돼도 수십만 가구가 겨울을 날 수 있는 50만 톤(가스 운반선 8척 분량)의 공급이 증발합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미-이란 전쟁 발발 한 달 만에 국내 가스 가격이 무려 90% 넘게 폭등했거든요.
수입처를 바꾸면 되지 않냐고요?
이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폭탄 돌리기에 불과합니다. 미국이든 호주든 결국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는 똑같으니까요. 현지 공장이 멈추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 순간 공급은 흔들리고, 가격은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미친 듯이 널뛰게 됩니다.
이래도 가스가 ‘안정적인 연료’일까요?
답은 결국 하나입니다.
가스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피해는 국민에게
제때 낡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청구서로 날아옵니다.
미-이란 전쟁 이후 유럽의 가스 발전 비용은 50% 이상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나라마다 희비가 완벽하게 엇갈렸죠. 가스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은 전기요금이 연중 최고치를 찍으며 비명을 질렀지만, 가스 대신 태양광과 풍력을 든든하게 깔아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는 충격이 아주 미미했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전력 시장의 독특한 '계산법' 때문입니다.
전력 가격은 평균치가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스위치를 켜는 ‘가장 비싼 발전원*’이 전체 가격을 결정합니다. 그 역할은 보통 가스가 맡습니다. 풍력·태양광처럼 가스를 대체할 저렴한 전원이 충분하다면 가스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수 있지만, 비싼 수입 가스의 비중이 높을수록 전력 가격은 크게 출렁이게 되는 것이죠.
여기서 ‘비싸다’는 전기를 추가로 생산할 때마다 매번 새롭게 드는 비용(한계비용)을 의미합니다. 가스는 연료를 계속 수입해와야 하기 때문에 이 비용이 가장 비싼 편입니다. 반면 풍력·태양광은 바람과 햇빛을 쓰기 때문에 추가 연료비가 들지 않죠. 있으면 무조건 먼저 써야 경제적으로 이득이죠. 실제로 한국에서 가스발전의 한계비용은 1kWh당 200원 수준인 반면 풍력·태양광은 0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2025년 초 대정전 때 "재생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그렇다"며 조롱받던 스페인은, 지금 오히려 가장 끄떡없는 시장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가스가 전력 가격을 흔드는 시간이 단 15%에 불과하거든요. 반면 가스에 목을 매는 이탈리아는 무려 89%의 시간 동안 가스 가격에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다음 청구서를 줄이려면
가스는 오랫동안 ‘안정적인 필수 연료’로 둔갑해 왔습니다.
전 세계는 앞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가스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에 불을 붙였죠. 이란은 지난 20년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왔고요.
이번 호르무즈 해협 사태로 우리는 가스 의존이 얼마나 무서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지 다시 한번 목격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충격은 앞으로도 언제든 터질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분명합니다.
가스 의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죠.
이번 경고마저 그냥 흘려보낸다면, 다음번에 날아올 청구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질 것입니다.